세상의 모든 부모들에게 바치는 고소장, '가버나움'

구경원 기자

작성 2020.07.30 19:02 수정 2020.08.01 17:33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한 부모님을 고소하고 싶어요. ' 한없이 어린 부모와 어른스러울 수밖에 없었던 열두 살 소년 자인. 영화는 부모와 자식, 어른과 아이가 완벽하게 전복된 모습을 통해 한 생명을 온전히 책임지는 행위에 대한 무게감과 태어난 그 자체로 학대를 받아야 하는 아이의 감정을 사실적으로 관객에게 보여준다.


어린 나이임에도 한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자인. 매매혼으로 팔려나갈 위기에 처한 여동생 사하르. 아기 요하스를 위해 희생하는 그의 엄마. 여성과 아이는 사회적 약자에 속하는 인물이다. 내전을 피해 도망친 난민들로 인해 혼란스러운 영화의 배경은 그들을 인권 피라미드의 추악한 밑바닥까지 추락시킨다. 이들을 보호해야 하는 기득권층은 좁게는 부모, 넓게는 국가지만 그들은 아무런 조치조차 취하지 않는 무책임한 모습을 보여준다. 자인의 부모는 현재 낳은 아이들의 뒷감당조차 불가능한 상황임에도 자신들의 쾌락을 즐기며 이성적인 아이의 아빠, 엄마라면 절대 내릴 수 없는 성인과 미성년자의 매매혼까지 장려시킨다. 국가는 사회적 약자들의 생존을 빌미로 벌어지는 범법 행위를 방관하고, 되려 약자들을 사지에 몰아넣으며 그들을 규탄한다.

 

자인은 이들 모두를 보호하기 위해 무던히 노력하는 사회적 약자들의 대표 인물이다. 사하르가 생리하는 사실을 들키면 결혼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생리대를 몰래 훔치며, 여동생을 떠나보내고 만난 요하스의 엄마가 불법 체류로 체포된 사이 요하스를 책임지는 보호자 역할을 맡는다. 비록 끝까지 지켜내지 못 했음에도 자인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했다. 흔히 사춘기 바람이 일렁이는 아이들이 투정을 부릴 나이에 성인조차 감당하기 힘든 무게를 지게 하는 것은 아이의 인생 전반을 망치는 감정적인 아동 학대다. ' 엄마의 말이 칼처럼 심장을 찌르네요 ' 자신 역시, 피해자라는 이유로 잘못을 정당화 하고, 이를 가볍게 넘기려 하는 가해자들의 태도는 끝까지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피해자들의 다친 마음을 마지막까지 찢어놓는다.


제목에 등장하는 가버나움은 성경에 등장하는 마을 이름으로 예수의 많은 기적이 행해진 곳이다. 그러나, 가버나움의 사람들은 회개하지 않았고 결국 예수는 그들이 멸망할 것이라 예언한다. 결말이 주는 행복감이 끝나면 수많은 자인과 사하르, 요하스가 존재하고 학대 속에서 살아가는 사회적 약자들의 현실에 대한 씁쓸한 감정이 밀려오며 영화의 제목이 의미하는 바를 한 번 더 곱씹게 만든다.

 

배우가 아닌 실제 난민들을 캐스팅함으로써 그들이 전하고자 하는 감정을 일말의 가식 없이 그대로 보여주는 '가버나움' 은 비슷한 결의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 보다 사회의 치부를 폭력적으로 묘사한다. 우리는 그들의 삶을 그 어떤 말로도 정의하거나 재단할 수 없다. 타인의 고통을 비교하며 자신이 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있구나, 위로하는 행위에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 자인이 흘린 눈물을 직접 닦아줄 수 있도록, 동정에서 그치지 않고 한 발 더 나아가 그들과 연대하며 가버나움 속 이어져가는 지옥을 끝낼 수 있길 감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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