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만화관] 1회

그 시절 내가 좋아했던 소녀들

입력시간 : 2019-06-09 22:04:24 , 최종수정 : 2019-06-12 19:34:40, 권호 기자
사진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즈(By Григорий Ларсен)


어린 시절 줄곧 나를 사로잡았던 소녀들이 있다. 평범한 여학생이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악당과 맞서 싸워야 했던 만화영화 속 소녀들. 그들은 마법이나 초능력을 얻게 되거나, 원래 잠재된 힘을 깨닫거나어떤 방식으로든 평범한 소녀에서 특별한 소녀로 거듭났다. 사람들을 괴롭히는 악당이 나타나면 화려하게 변신해서 어여쁜 여전사의 모습으로 꿋꿋하게 싸웠던 그 소녀들을 나는 몹시도 사랑했다.

 

길을 걷다 고양이를 만나면 안녕?” 하고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세라를 찾아와 세일러문으로 이끌어준 고양이 루나처럼 나에게 말을 걸어올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고서. 길을 걷다 우연히 못된 악당들을 마주치지 않을까 조마조마했던 적도 있다. 또 길을 걷다 소녀 히어로의 변신 장면이나 활약하는 모습을 목격하고서 그걸 계기로 영웅들과 절친한 친구가 되어 그들의 조력자가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상상도 했다. 이런 엉뚱한 상상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쯤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그 시절 내가 좋아했던 소녀들은 어쩌면 내가 그 누구보다 닮고 싶었던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린 마음에도 세상에서 내가 쓸모없는 존재라는 자괴감이 드는 날엔 특별한 존재이고 싶어’, ‘나도 초능력이 있었으면 좋겠어’, ‘누군가를 돕고 싶어하면서 소녀 영웅이 되는 상상을 했다.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세상을 지키기 위해 싸워주었던 나의 소녀들. 내가 선량한 사람이 되어 세상에 보탬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해준 나의 소녀들. 실존하진 않지만 현실의 사람들보다 나에게 더 많은 영감을 준 나의 소녀들.

 

나는 오늘도 어릴 적 나의 영웅이었던 소녀들을 생각하며, 아이러니하게도 내일도 특별한 일 없는 평범한 하루이기를 바란다. 소녀들에겐 미안하지만, 지금 나의 영웅들은 매일매일 출근을 해내고, 가정에서 각자의 역할을 해내고, 틈틈이 취미생활을 해내고, 가끔은 친구의 상담사 역할도 거뜬히 해내는, 그런 어른스러운 평범한 삼십 대 여성들이다. 특별한 존재이기를 꿈꾸기엔 모난 돌이 정 맞는 현실을 너무 뼈저리게 깨닫고 말았으니까.

 

지극히 평범한 사람으로 보통의 삶을 꿈꾸고, 오늘도 별일 없는 하루를 살아내고 싶은 지금의 나는, 그 시절 내가 좋아했던 소녀들과 도대체 얼마나 멀어져버린 걸까.




[뮤즈: 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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