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스타 작고 귀여워] 1회

나는 인스타로소이다

입력시간 : 2019-05-17 23:22:50 , 최종수정 : 2019-06-12 20:26:59, 임주하 기자

프롤로그 - 나는 인스타로소이다





나: ‘찰칵’


인스타: 뭐야? 사진 찍었어? 보여줘 봐봐.

나: 응. 친구 만나서 카페 왔거든.

인스타: 아이스라떼랑 레몬 타르트 시켰구나. 원래 이 카페는 딸기라떼가 인스타용으로 제격인데. 데코레이션을 아주 힙하게 해주거든. 뭐, 그냥 라떼도 나쁘진 않지만. 우유와 에스프레소 샷의 그라데이션이 잘 살아 있으면 그런대로 포토제닉하니까. 레몬 타르트는 잘 골랐어. 노란색이 환하게 살아서 사진에 아주 예쁘게 나온다. 아직 라떼 빨대로 젓지 말고 잠깐 기다려봐. 좀전에 찍은 사진 올리려고?

나: 그럴까 하는데. 왜, 좀 별로인 것 같애?

인스타: 아니 꼭 그렇다기보단. 흠, 배경이 영 정신사납지 않니. 다른 사람들도 너무 많이 나오고. 저기 테이블에 늘어놓은 가방이랑 냅킨 같은 거 치우고 다시 좀 찍어 봐. 혹시 오늘 들고 나온 거 명품이야? 그건 아니지? 그러면 가방도 안 보이는 데에다 잠깐 치워줘.

나: 이렇게?

인스타: 그래, 좀 낫다. 근데 음식이 어째 먹음직스러워 보이지를 않네. 항공샷으로 찍어보는 게 어때? 카메라를 높이 들어서 거의 직각에 가까운 시선으로 찍어봐. 테이블에 올라온 메뉴들이 한눈에 보이게. 음료랑 케이크 모두.

나: '찰칵’ ‘찰칵 찰칵’

인스타: 그렇지. 인스타 보기에 이제야 좀 흡족하네. 앞으로도 이렇게 조금만 더 공들여서 찍어 봐.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찍어서 올리는지도 보고 배우고 말이야.

나: 알았어. 그래도 올릴 만한 거 건졌다니 다행이다. 얼른 한 장 올리고 커피 마셔야지. “오늘 민정이랑 완전 오랜만에 만남! 그동안 밀린 수다를 떨러 서촌 카페에 왔다 (...)”

인스타: 어우 잠깐만, 잠깐만! 뭐 그렇게 구구절절 말이 많아? 누가 너한테 일기 쓰랬어? 피곤하다 피곤해. 그렇게 긴 글 어느 세월에 누가 읽고 있겠어. 좀 짧게 짧게 쳐봐. 누구랑 어디 갔는지 일일이 다 늘어놓지도 말고.

나: 알았어.... “일요일 오후” 이 정도로 할까?

인스타: 그만하면 됐어. 마음에 드는 아이폰 이모지 있으면 뒤에 몇 개 붙여줘도 괜찮고. 해쉬태그 붙이는 거 까먹진 않았지? 적당히 느낌 있고 감성 있는 걸로 넉넉하게 붙여두라구. 어디 다녀왔는지 얘기하고 싶으면 그것도 해쉬태그로 달아주고.

나: "#서촌카페 #아이스라떼 #수다”

인스타: 그래, 무난하다. 어, 마침 너 친구도 지금 뭐 하나 올렸다. 한남동에 데이트하러 갔나봐. 대박! 얘 완전 있어 보이는 이자카야 갔는데? 너도 이런 곳 좀 찾아다니고 해봐. 남들 다 가는 유명한 곳 말고 숨은 맛집을 발굴해보란 말이야. 덤으로 사진빨 잘 받을 만한 시계나 가방도 한두 개 장만하면 좋고. 근데 가방도 너무 하나 가지고 돌려막기하면 안 된다? 그러면 더 없어 보인다니까. 아니면 하다못해 젤네일이라도 받고 오든지. 조막만하게 나오는 손끝에라도 힘을 줘야 하지 않겠니. 그리고 또...

나: 됐어, 됐어,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참견 좀 하지 마. 난 이제 커피 마시러 갈게. 얼음 다 녹아서 맹탕 되겠다.

인스타: 그래그래. 일단 커피 마시고, 누가 너한테 좋아요 눌러줬는지 확인하러 이따 잠깐 들러.

[뮤즈: 라봉클럽 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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